尹 탄핵소추에 결정타 날리고는… 말 달라지는 ‘국정원 넘버 2’
국정원장, 전 직원들에 반박 서신
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12·3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홍장원 전 국정원 1 차장의 주장을 전면 반박하는 서신을 최근 국정원 전(全) 직원에게 보낸 것으로 26일 전해졌다. 홍 전 차장은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‘(정치인) 싹 잡아들여’라는 지시를 직접 받았고, 계엄 선포 직후 국정원장이 자기 보고를 묵살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 왔다. 이는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. 이에 대해 조 원장은 서신을 통해 “홍 전 차장이 나와 내 인격에 대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있다. 내 명예를 걸고 사실이 아니다”라며 홍 전 차장의 ‘보고 묵살’ 주장을 반박했다. 조 원장은 지난달 8일 국정원 직원들과 소수의 외교부 원로, 조 원장 지인 등에게 서신을 전송했다고 한다.
◇달라진 ‘정치인 체포’ 주장
정치권에서는 “‘윤 대통령 정치인 체포 지시’를 둘러싼 홍 전 차장 주장이 야당 공세에 맞게 조금씩 달라졌다”는 지적이 나온다. 홍 전 차장은 계엄 사흘 뒤인 지난달 6일 국회 정보위원들을 만나 “윤 대통령이 ‘이번 기회에 잡아들여. 싹 다 정리해’라는 지시를 내렸다”라고 밝혔다. 그는 그날 한겨레 인터뷰에서는 “대통령으로부터 (계엄 선포 당일) 한동훈 대표를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”라고 했다.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막기 위해 특정 정치인들을 체포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것이다.
하지만 홍 전 차장은 다음 날인 지난달 7일 KBS 인터뷰에서 “대통령이 저에게 직접 한 대표를 체포하라고 지시했다고 (인터뷰 기사에) 나와 있는데, 그건 아니다”라고 했다. 그러면서 “(체포) 명단은 (여인형 당시) 방첩사령관이 밝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측면도 있다”라고 했다. 체포 대상 정치인 명단은 윤 대통령이 아닌 여인형 사령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나왔다는 것이다.
◇‘보고 묵살’ 관련 논란
홍 전 차장 말이 달라졌다는 논란은 또 있다. 계엄 선포 당일, 조 원장이 자기 보고를 묵살했다는 주장과 관련된 것이다.
지난달 6일 국회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홍 전 차장과 만난 뒤 브리핑에서 “지금까지의 상황은 우리(정보위)에게 보고하기 전까지는 (홍장원) 자기밖에 몰랐다고 했다”라고 전했다. 그런데 홍 전 차장은 지난달 7일 KBS 인터뷰에서 “(국정원 정무직 회의에서) 조 원장에게 (관련 내용을) 보고했더니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렸다”라고 했다. 이틀 뒤 KBS 인터뷰에선 “(내가) 목소리를 높였더니 조 원장이 벌떡 일어나서 방을 나가버렸다”고도했다. 그러더니 한 달여가 흐른 지난 22일 국회 국정조사 특위 오전 회의에서 그는 “정무직 회의가 열리는데 (관련 내용을) 어떻게 말씀 안 드릴 수 있겠는가”라고 했다가, 오후 들어선 “사실 정무직 회의 때는 (정치인 체포 사실이) 너무 민감한 것이라, 정무직 회의가 끝나고 보고했다”라고 말을 바꿨다.
조 원장은 “홍 전 차장을 비롯한 국정원 정무직 누구로부터도 ‘대통령으로부터 정치인 체포 지시를 받았다’는 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다”는 입장이다. 조 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특위에서 “홍 전 차장은 대통령이 정치인 체포 지시를, 즉 싹 다 잡아들이라는 말을 (했다고 보고) 한 적이 없다”라며 “(홍 전 차장은) 방첩사가 정치인들을 체포하러 다닌다고 하지도 않았다. 방첩사가 정치인을 잡으러 다닐지 모르겠다고 했고 대통령이 전화했다는 이야기와 그사이엔 두세 가지 얘기가 끼어 있는데 (그걸) 띄어놓고 이야기한 것”이라고 했다.
◇‘홍장원 교체’ 관련 논란
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의 체포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교체됐다고 주장해 왔다. 이에 대해 조 원장은 서신에서 “지난달 4일 오후 홍 전 차장이 ‘국정원장이 이재명 (민주당) 대표에게 전화하는 것이 좋겠다’고 말했다”며 “민감한 시기에 야당 대표에게 전화하라는 것은 정치적 의미로 해석될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판단해 ‘국정원장은 전화하지 않을 것이며 홍 차장도 하지 마라’고 지시했다”라고 밝혔다. 조 원장은 “홍 전 차장과 계속 일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(대통령실에) 교체를 건의한 것이고, ‘입막음’을 위해 사표를 돌려주는 등의 번복 없이 인사는 수순대로 진행됐다”라고 했다. 조 원장은 국회 특위에서는 “제가 정치인 체포 등을 보고받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홍 전 차장을 쉽게 교체할 수 있었겠느냐. 대통령도 (나의 교체 건의를) 승인했겠느냐”라고 했다.
한편, 민주당은 홍 전 차장의 주장을 근거로 지난달 9일 조 원장을 내란 및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.